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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만의 외출(소식지원고)

최태규 0 843 2011.12.30 10:12
36년만의 외출 2011년 한해가 저무는 12월 마지막 토요일 -동기집사님이 소식지 편집위원이라 원고청탁을 자주 받네요-『36년만의 외출』이라는 제목으로 작은 글을 쓰기로 하였습니다. 살아오면서 삶의 주변에 수없이 세워진 십자가를 바라보고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닫지 못하다가, 도원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변화가 바로 ‘기적’이라고 늘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교직생활을 시작하면서 사회에 발을 딛은 지도 올해로 36년이나 되었습니다. 예천 근무 삼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안동지역에서만 초등학생들을 가르쳐 왔습니다. 새마을 사업이 한창인 70년대 중반, 전형적인 농촌생활 즉, 고향이며 모교인 녹전초등학교에서, 조부님 슬하에서 숫총각으로 코흘리개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골총각선생이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오줌장부이 한 짐 과수원에 거름으로 주고 나서야 아침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그 때는 농촌생활이 바빴습니다. 쥐꼬리만한 한 달 봉급 34,000원을 몽땅 조부님께 드렸고, 어쩌다 설권사랑 데이트하려면 차비와 용돈을 얻어서 가곤 하였습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가 너무 좋았지요. 농촌이라 농번기엔 모내기하고 점심과 또 새참을 먹고 시냇가 버드나무 그늘에 한 잠 자고 막걸리 한 사발로 피로를 달래던 그 시절이 한편의 시네마처럼 스쳐갑니다. 교직생활 4년 만에 설권사랑 결혼하면서 집안 살림이 모두 두 사람에게로 넘어오고 말았습니다. 일찍부터 교직생활하시다가 삼십대 후반에 돌아가신 아버님의 삶의 짐 덩어리가 두 배로 내 어깨에 걸쳐진 것이지요. 맞벌이 부부로 조부모님 모시는 일과 4남매 맏이로 동생들 건사할 일들 등…… 살림이 어떻게 꾸러가는 지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학교일에만 충실했던 나날들이 수없이 지나갔습니다. 첫째가 태어나고, 둘째가 커가면서 모든 삶이 바쁘고 바빠, 하나님을 영접하라 하시는 원로목사사모님(당시 용상교회목회)의 인도하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 참 후에야, 설권사가 교회에 먼저 나가게 되었습니다. 사대봉제사를 지내는 시골 풍습에 빠져 살아온 가정이 갑자기 하나님을 섬기기엔 너무나도 큰 시련이 몰려왔습니다. 고난의 역경을 교인들의 수많은 기도와 함께 넘어서면서 믿음이 제자리를 잡아갔습니다. 교사생활 36년 만에 구미시로, 늦은 승진인 교감으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설권사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챙겨주던 아침밥을 36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서 직접 쌀 씻어 밥 짓고 된장 끓여 먹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식사 때마다 먹으라고 마련해 준 밑반찬이 때마다 꿀맛이어서 신혼 초부터 애쓴 설권사의 살림살이가 너무 고마워 주말에 집에 가면 날마다 업어 주리라는 생각으로 고마움을 되 뇌이곤 합니다. 올해 우리 식구 네 명이 모두 새 출발을 하였습니다. 고난의 뒤편에 주님이 주시는 사랑을 받으려고 식구들이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36년만의 외출이 지난날의 삶을 조용히 반성하게 하심에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구미시 교육청관내 학교사택에서 날마다 새벽 5시 반에 기상하여 성경묵상(오늘은 다니엘서 11장, 찬송가 449장, 사도신경으로 시작한 성경묵상이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으로 하루를 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최태규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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