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 도원교회

자료실

이정자B집사님

설순옥 0 649 2019.01.15 12:01
이정자B집사님을 심방하면서 들은 이야기 12샘 이정자집사님을 최장로와 함께 심방했다. 단비원 이층 작은 방에 집사님은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 계시다가 일어나셨다. 83세의 연세에도 단정한 모습으로 느껴졌다. 단비원에서 주방일을 보시는 김명숙집사님의 모친이기도 한 집사님은 중국에서 사시다가 10여 년 전에 한국으로 왔다고 하신다. 마산이 고향인 그녀는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셨는데 어느 날 일곱 명의 독립투사들이 자신의 집에서 중국으로 가고자 하는데 일본군들에게 발각되어 제 자리에서 두 명이 붙들려 마당에서 총살을 당하고 다른 다섯 명은 뿔뿔이 흩어졌다는 것이다. 아버지 또한 그 날 이후 보지 못하고 어머니와 남매가 살았다고 한다. 힘든 삶을 살다가 부산으로 이사를 갔는데 거기서도 살길이 없어 아버지가 갔을 중국으로 떠났다 한다. 그 곳에서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남매는 육촌 오빠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동생은 그나마 공부를 할 수 있었으나 자신은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 구경도 못하고 생활전선에 들어갔다. 일찍 남편을 만나 이남이녀를 낳고 남편이 병석에 눕게 되었다. 그 길로 집사님은 돈을 버는데 온힘을 다 했다고 한다. 하루 세 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을 정도로 돈을 벌었다. 그 곳엔 102명의 한국인들이 미아코에서 살았다. 독립군으로 간 사람은 안동에서만도 1,300명의 많은 숫자가 갔으나 돌아온 사람은 700명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총살 사건에 많은 청년들과 젊은 사람들이 참가했는데 그 당시 어느 중국 할아버지한테 들은 현장은 무참하고 비참했다고 한다. 이토의 총살사건이 나자 무자비하게 한국인들의 목을 무차별로 잘라대어 시체위에 시체가 피바다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래서 차에다 시체들을 삽으로 끌러다 실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감히 상상도 못할 끔찍한 일이었다고 한다. 안중근은 일을 저지르기 전에 자신을 꼭 한국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했다는 것이다. 부친은 아직도 독립군으로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또한 살아 돌아오지도 않아서 아직도 못 찾는 사람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집사님은 두 아들을 결코 팔로군(공산당군대)에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은 서른 살 때 쯤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넓은 집에 80명의 많은 사람들을 모아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다. 현재는 자신의 사위 둘이 목회활동을 하고 있으며 큰 딸(김명숙집사님)도 사실은 한국에 선교활동을 하고자 왔다는 것이다. 두 아들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며 중국에는 막내사위가 두 교회의 목사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 입적이 되어 있어 늘 기도 하며 한국에 오기를 원하여 기어이 한국에 오게 되었다. 현재는 단비원에 입원하여 요양생활을 하고 있으며 단비원에서 네 분을 전도했다고 전한다. (편집부)

Comments